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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정리의 힘>

by 인솜니 2023. 12. 23.

엊그제 하루 종일 옷정리 책정리를 하고 우체국에서 박스를 사왔다. 금쪽같이 아끼던 옷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다. 내가 지금은 아무리 애를 써도 도달할 수 없는, 20년 전의 몸이 되지 않은 한 입을 수 없는 옷들은 그만 보내기로 했다(딸도 이미 골격이 넘침) 지금 나는 7년 전의 몸으로 돌아가는게 목표이다^^
 
최근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을 사서 읽고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까지 보았다. 다시금 비우고 싶다는 분기와 용기가 솟아올랐다.
 
몇년전 곤도 마리에의 예전 책을 읽고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었고,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가 고객들의 집을 찾아가 정리를 도와주는 티비 시리즈도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 그때 한바탕 정리를 하고 물건들을 꽤 버렸지만, 물건들은 꾸물꾸물 다시 생겨났다 가끔씩 버려지기를 반복했는데, 서랍 속에 옷을 세워 개는 수납법으로 ‘곤마리하기’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나는 원래는 정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법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집안은 끝도 없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철이 바뀔 때마다 정리를 하는데, 뭐랄까 가지치기일 뿐 계속 자라나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놈이 바로 우리집의 혼돈이다. 사실 애를 키우다 보니…라는 조건이 강력하긴 하지만 근본 원인은 버리는 것을 못하는 두 사람일 것이다. 물건을 아까와서 잘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향과 자기 물건을 버리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남편의 고집, 그리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너무 원칙에 얽매이는 나의 정책적 실수가 더해져 이렇게 되었다.
 
나부터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원체 모아들이기만 하려고 하고 버리기를 잘 못하지만,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강제로 전수받은, ‘집에 맞추어’ ‘내 형편에 맞추어’ 나의 물건을 사들이고 버리는 삶의 지혜가 있기에,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 싶으면 분연히 일어나 버리기를 실행했다. 역시 엄마에게 이어받은 정리수납의 기술 역시 내가 많이 버리지 않고 어떻게어떻게 해나아가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남편은 나와는 인종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었다. 단지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다만 서가의 규모가 나의 열배에 이르를 뿐…) 20년전 대학생때 보던 낡은 보캐블러리 책조차 버릴 수 없다는 완강함에는… 나도 두손두발 다 들었다. 내가 밀고 밀고 밀어 붙여서 겨우겨우 이십년전부터 안 입는 옷들을 버리고 너저분하게 쌓여있는 책들을 책장을 사들여 정리해왔다.(책은 못 버리고 십년전부터 안 입는 옷들은 아직도 못 버렸다.)
 
그러다 보니 집정리를 한다는건 나의 무한한 의지와 상당한 체력, 끝없는 인내의 연속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점점 지쳐가고 타협하다 보니 내 마음 속에 의지란 것의 불꽃이 스러져버렸다. 어차피 내가 버려도 쟤가 사들이면 그뿐인걸. (게다가 요즘은 책도 아니고 전자기기를 끝도 없이 사들여서 박스를 마루에 내버려두고 있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다.)
 
그 황량한 잿더미 속에 정리의 힘이 들어왔다. 곤도 마리에 언니의 진솔하고도 단순명쾌 친절한 설명에 다시금 기운을 내어 정리를 시작했다.
 
설레지 않는 것은 버려라.
 
단순한 원칙인데 지키기는 어렵다. 왜냐면 이 책을 샀던 과거에는 설레었고, 그때의 현재의 관심사와 그때의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책을 읽고 탐구하길 원했던 것이고, 이제 와서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버리기엔 아직까지도 내게 그 관심사와 그 미래의 희망은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의미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 버렸던 것인데,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의 희망과 관심, 설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갖고 있던 것인데, 그 일말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책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그래서 내가 지금 원하는 책을 꽂을 수 없고 지금 마음 가는 대로 책을 뽑아 볼 수 있는 편리하고 여유있는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 존재의 부담이, 저 책을 읽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못 하고 있구나 하고 추가되는 내 할 일들 목록 증가의 무한한 기울기의 무게가 있어 나를 짓누르기에 나는 그 책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나의 현재가 나의 과거와 미래에 노예처럼 봉사하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나의 현재가 너무 좁은 틈과 너무 무거운 몸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없고, 다가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짓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질질 끌고 가지 않기 위해, 걸어가고 또 뛰어가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몇년 전부터 손을 다치는 바람에 오랫동안 고생을 하면서 방바꾸기를 한 다음에도 정리하는 것이 무서워 대충만 하고 말았었다. 그후 교통사고로 허리가 안 좋아지니 요즘엔 뻑하면 허리를 다친다. 열심히 한의원 다니며 좀 나아져서, 이제야 정리를 할 수 있다. 너무 많아서 한번에 다 하지도 못 한다. 며칠 몇주를 걸쳐서 책을 솎아내고 내 책상과 가구의 배치를 손보고 벽장 속의 오래된 물건들까지 다 버릴 것이다. 편하고 설레는 공간으로 내 방을 만들 것이다.
 
정리를 하다보니, 둘까 말까 고민할 때 아까와서 다시 꽂으면 가슴이 울울하니 답답함이 생기더라. 설렘도 의미있는 표지이지만, 나에게는 가슴의 무거움도 확실한 표지가 된다. 어쩌면 지금 내가 내 인생을 어디로 가야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건 싸짊어진 짐의 무게와 크기에 압도되어서일 것 같다. 그 책들은 단지 나의 과거의 무게가 아니라 나의 미래의 수많은 경우의 수이며,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해지는 부담이다.
 
정리하던 중에 방에 서서 보니 나의 현재가 나의 과거와 미래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의 과거의 미래를 이젠 좀 보내주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관심사가 많다지만, 그래도 하루는 24시간뿐이고 아직 아이들도 한참 더 키워야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뒤에서 기다린 나도 더 늦기 전에 키워주고, 밀어줘야 한다. 나 혼자 너무 많은 것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책장에 책을 빽빽하게 가로로 뉘여서까지 채우는 편이었는데 빈공간이 좀 생기니까 시원하다. 책장의 나무색이 보이니 마음이 편해진다. 주로 만화책을 뉘여놓는데, 앞으로 만화책을 세로로 꽂는게 목표다. 만화책도 좀 팔아버리고, 진짜로 좋아하는 것들만 남겨놔야겠다. 언젠가는 책장 위에 올려놓은 공간박스도 치워버릴 것이다. 책장 머리에 무거운 책들을 이고 앉았으니 맨날 머리가 무겁고 피곤하지 싶다.
 
곤도 마리에 언니의 애니미즘은 맞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물건들과 교감하고 있다. 우리는 물건들과 더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한데, 물건이라고 무한히 가질 수 있으랴? 그건 자본주의와 계몽주의, 가부장제 남성들의 착각이고, 오만이다. 내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사람은 소유할 수 없고, 물건도 내가 돌볼 수 있는 만큼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정리를 하고 가벼워지고 싶다.
나는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는, 버리는 힘을 키우고 싶다.
그 힘으로 관계를 바꾸고 싶다.
나는 가볍게 행장을 꾸리고 아무 데로나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다.
쉽게 내 발자국을 떼길 원한다.
나는 자유를 원한다.
 
 
2023.12.23.토
 
인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