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8 안에서 먼저 찾아라 아침에 일어나 환기와 습도조절을 하고 소금물로 코세척을 하고 등등 아침 루틴을 하던 중에 방구석의 물건들을 보니 정리하고픈 생각이 났다. 좀 큰 일은 뒤로 미루고 책상옆 작은 서랍장 부근의 물건들만 좀 정리하던 중에 맨 윗서랍을 확 열었는데… 또르르 굴러나오는 동그란 것… 엊그제 레슨을 가려고 바쁘게 가방을 챙기는 와중에 이상하게도 이어폰이 안 보였다. 책상에도 맨날 두는 맨윗칸에도 안 보이고, 아 내가 비오는 날 혼자 음악회에 갔었다. 공연장 들어가기 전 까페에서까지 음악을 들었으므로 분명 그때까지는 나에게 있었다. 혹시 어두운 공연장에 떨군걸까? 아들과 같이 보려고 두 자리 예약했는데 아들이 안 오는 바람에 빈 좌석에 가방을 놓아두고 편하게 볼까 잠시 생각했다가 무릎은 편하지만 마음은 안 편하다는 걸.. 2025. 6. 29.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녀 얼른 지하철을 타려고 가는 길이었다. 시끄러운 지하철의 소음과 번잡함에서 나를 차단하기 위한 고성능차단기-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얼른 가는 길이었다. 외국인 젊은애가 보였다. 밝은 금발에 얼굴은 백인들이 흔히 그렇듯 흰게 아니라 분홍색인, 말갛고 화장도 전혀 하지 않은 스무살 될까 말까한 어린애였다. 흘깃 쳐다보며 참 분홍색이구나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런데 나를 부른다. 혹시 길을 물으려고 하나 싶어서 얼른 뒤집어쓴 헤드폰을 벗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앞에 안고 있던 왠 종이상자를 조심스럽게 열더니 꽤 유창한 한국어로 자기는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전쟁으로 힘든 고국의 사람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상자엔 알록달록한 슬라브풍의(용서하기를 바란다. 러시아 마트료슈카 비슷하.. 2025. 6. 21. 한발짝 등불로 십리를 간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가 지은 만화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뒤늦게 플룻을 시작한 주인공에게 플룻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신다. 네가 남들보다 늦었고, 그래서 뒤쳐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면 불안하고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차라리 주변을 보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내가 걸어가는 요만큼씩의 길만 바라보라고. 그 대목은 두고두고 내게 생각났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끝없는 갈등과 저항 속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주저앉아 가슴 속으로 울고 있을 때, 끊임없이 울리는 이 나이에 해서 무슨 소용? 아무도 너에게 그런걸 기대하지 않는데? 하는 목소리와 싸우면서, 차라리 지금은 아예 포기를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도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아 가슴이 타들어갈 때. 그러다가 오쇼 라.. 2025. 5. 25. 내가 만난 어른 아마도 고등학교때의 일이다. 내가 다닌 학교는 불교학교라 해마다 초파일이 가까와지면 연등을 만들었고 초파일 행사에 참가해야했다. 한잎 한잎 연꽃을 정성스레 붙이는 일은 좀 재미있었지만 초파일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은 좀 그랬다. 하지만 어쨋거나 나는 반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나게 떠들면서 여의도로 갔다. 고등학생인 우리는 이제 머리가 좀 굵었다고 종교 및 사회현상을 비판했다. 불교는 썩었어, 나와 한 친구가 논쟁을 주도했다. 천주교는 그래도 깨끗해. 때는 80년대, 즉슨 김수환 추기경의 인덕이 온누리에? 미치고 명동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통하던 시절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는 아기를 데리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우리의 논쟁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우리가 열띤 종교 논평을 끝내고.. 2025. 4. 15.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