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리한다고 꺼내어 놓은 물건들로 정신없던 마루를 둘째의 친구들이 놀러온다는 말에 대충 정리했다. 구석에 선 트리 전등에 불을 켜니 참으로 아름답고 그윽하다. 저절로 몸이 깔아놓은 매트 위로 간다. 그동안 아침운동을 빼먹은 이유가 어지러운 마루 때문이라는 것이 새롭게 또 느껴진다. 그렇지, 주변이 어지러우면 뭘 하기가 싫어지지.
운동을 한다. 나에게 등을 붙일 집이 있고, 마루가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어 행복하다. 운동하는 중에 슬깃슬깃 옆으로 보이는 불빛, 검은 피아노에 반사된 더 영롱한 불빛. 하기 싫던 운동을 금새 다 하고 일어나 배부를 때까지 트리의 불빛을 보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우리집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돈없고 비싸다는 이유로 트리도 안 샀고, 반짝이는 (그때는 최신이던) 색색깔 비닐로 된 술 같은 것도 아주 나중에야 샀는데 그때도 트리는 안 샀기에 집에 있던 화분에 장식한 기억이 난다. 우리는 색종이를 오려서 주욱 이어붙여서 장식을 만들었다. 심지어 나는 마분지를 이용해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었다. (없이 살던 시절엔 애들이 창조력이 폭발한다.) 똑같은 그림을 3개 그려서 잘 오려서 붙이면 세울 수가 있다. 그때 같이 만들었던 천사상은 트리 꼭대기에서 뽐내면서 오랫동안 살아남았었다.
메마른 십대 20대는 그냥 넘어가고, 결혼한 후에 내 집을 내가 꾸미게 되면서 나는 작은 트리를 하나 샀다. 그리고 첫째가 태어난 뒤에는 큰 트리를 샀다. 내가 어려서부터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서양의 진짜 전나무 베어다 만드는 생트리의 리얼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진짜 트리와 굉장히 유사한, 잘 만든 플라스틱 트리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꼬마 전구등을 달았다.
반짝이는 그 불빛을 보면서 나는 차분해지고, 평화로와지고, 한해의 모든 시름과 분투가 녹아내리는 위안을 느꼈다. 예전에 소시적에 성당 다닐 때 성당 마당에서 한없이 바라보던 모닥불 생각이 났다. 그후로 나는 내가 천주교가 안 되었으면 배화교가 됐을거다, 하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잉걸불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했었다. 지금까지도 모닥불은 무조건 좋아한다. 그렇다고 배화교가 되지는 않았지만…(더이상 천주교도 아니지만)
첫째를 낳고 뭐가 뭔지 모르던 초보 엄빠 시절, 우리는 밤에 자지러지게 우는 애를 달래려고 어디서 배워온 기술을 썼는데, 애를 바깥으로 향하게 안고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이다. 그때 마침 내가 전등을 달아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신기했는지 아이가 서서히 진정을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진정 체험했다.
그후로도 그 비싸고 멋진 트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창고에서 걸어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등불이 되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말도 못하게 좋아했다. 애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고대하던 시절, 완전범죄를 위해 애들 없을 때 선물을 사고 포장지를 사서 몰래 포장을 한 후 택배상자 속에 숨기고 위장하며 남은 포장지로 쓸데없는 추론을 안 하도록 잘 포장해서 벽장에 잘 감춰놓는 작전, 애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 혹시라도 잊지 말고 얼른 선물을 트리 아래에 갖다 놓는 작전, 그리고 조용한 크리스마스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찾아 열고서 좋아하던 아이들의 기쁨과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은 글귀들을 읽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던 행복, 올해도 무사히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선사했다는 안도감, 모든 것들이 이제는 아련하다.
둘째마저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안 후에도 한동안은 트리 아래에 선물을 놓았으나, 올해부터는 아예 그냥 알라딘에서 책으로 주문해달라는 초등 고학년 언니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방 한쪽 벽을 책장으로 채우고 자기 취향의 만화책들을 멋지게 정리해놓기 위해 안 보는 책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나보다 과격한 딸의 실용주의를 구실삼아 나도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은 졸업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트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오고, 연초가 되어서 들어갈 때까지 우리집 마루에서 밤마다 온기를 내뿜을 것이다. 십오년을 써도 멀쩡한걸 보니 20년 30년도 문제없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부터 연초까지 1, 2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새벽마다 나에게 선사하는 만족의 시간을 가진다. 나의 한해를 마무리하는 작은 의식이다.
인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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